걸린 부분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13절 사이에는 서로 나란히 놓고 보면 조금 어긋나 보이는 두 표현이 있어요. 11절과 12절에서는 배우다, 라는 동사가 반복돼요. 배고픔도 배웠고 풍족함도 배웠다고 해요. 그런데 13절에 가면 갑자기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선언이 나와요. 배움이라는 느린 과정과 모든 것이라는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한 문단 안에 같이 있는 거예요.
또 하나 걸리는 지점은 13절의 힘을 주시는 이라는 표현과 11절, 12절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 사이의 거리예요. 11절에서는 자족이라는 말로 자기 안의 상태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다가, 13절에서는 그 힘의 출처를 바깥에서 오는 것으로 돌려요. 이 두 흐름이 어떻게 하나로 이어지는지가 읽는 사람에게 질문으로 남아요.
본문과 주석

11절의 자족이라는 낱말을 두고 여러 주석이 원어의 분위기를 짚어요. 존 길은 이 낱말이 본래 자기 안에 충분함을 가진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봐요. 엄격한 의미로는 오직 하나님께만 해당하는 말이지만, 낮은 의미에서는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고 설명해요. 그는 바울이 음식과 옷이 있을 때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을 때조차 그런 자족을 가졌다고 짚어요.
JFB 주석은 이 낱말의 뿌리가 본래 스토아 철학자들이 쓰던,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충분하다는 뜻의 말이라고 해요. 그런데 그리스도인에게 와서는 그 충분함의 근거가 자기 자신에서 하나님 쪽으로 옮겨졌다고 봐요. 같은 낱말을 쓰면서도 그 안을 채우는 내용이 달라졌다는 점을 짚는 설명이에요.
12절의 본다, 라는 표현을 두고 아담 클라크는 바울이 실제로 이 모든 상태를 겪어 보았다는 점을 강조해요. 원어의 동사가 신비 의식에 입문한다는 뜻을 품고 있어서, 단순히 아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훈련되고 길들여진 상태를 가리킨다고 설명해요. JFB도 이 낱말을 비밀스러운 가르침에 입문했다는 뜻으로 풀어요. 세상은 모르는 어떤 비밀을 전수받은 사람처럼, 각각의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혔다는 뜻으로 보는 거예요.
매튜 헨리는 이 부분 전체를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물에 대한 감사의 흐름 속에 놓아요. 바울이 자족을 말하는 이유가 선물이 부족해서 불평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려는 데 있다고 봐요. 헨리는 낮아짐에 적응하는 것과 풍족함에 적응하는 것을 각각 별개의 은혜로 구분해요. 풍족할 때 교만해지지 않는 것도, 궁핍할 때 낙심하지 않는 것도 똑같이 배워야 할 기술이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셈이에요.
13절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선언에 대해서는 여러 주석이 조심스럽게 범위를 좁혀요. 존 길은 이 말이 무한정한 전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해요. 아담 클라크는 이것이 반복된 훈련으로 얻은 습관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진 성향이라고 구분해요. JFB는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그리스도라는 낱말이 없고, 힘 주시는 그분이라고만 되어 있다고 전하면서, 그 힘의 출처가 바울 자신의 어떤 능력이 아니라 그와 연합된 존재에게서 온다고 봐요.
헨리는 이 모든 설명을 한데 모아, 바울의 감사가 선물의 크기 때문이 아니라 선물을 보낸 마음 때문이라는 점을 짚어요. 적음에도 감사하고, 늦음에도 탓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13절에서 말하는 힘이 실제로 작동하는 부분이라고 보는 거예요.
오늘 할 것

오늘 하루 동안 자기 형편을 한 문장으로 적어 보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아요. 지금 넉넉한 쪽에 가까운지, 부족한 쪽에 가까운지를 정직하게 써 보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그 형편에 대해 평소에 어떤 말을 속으로 되뇌는지를 살펴봐요. 부족할 때 불평이 먼저 나오는지, 넉넉할 때 자랑이 먼저 나오는지를 점검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빌립보서 4장 11절부터 13절까지를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배우다, 라는 낱말이 몇 번 나오는지 세어 봐요. 그 반복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져 봐요. 배움이라는 말은 단번에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과정을 가리키니까, 오늘 하루도 그 배움의 한 단계로 여기고 지내 볼 수 있어요.
저녁에는 오늘 하루 동안 자기 형편에 감사한 순간이 있었는지를 되짚어 봐요. 거창한 감사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밥 한 끼, 짧은 대화, 작은 여유 같은 것도 좋아요. 그 감사를 한 줄로 기록해 두면, 다음에 형편이 바뀌었을 때도 그 기록을 다시 꺼내 볼 수 있어요.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누는 기도제목으로 삼아도 좋은 내용이에요.
남은 물음

13절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가리키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바울이 겪은 궁핍과 풍족함의 상황에 한정된 말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넓은 삶의 영역까지 가리키는 말인지는 주석마다 방향이 조금씩 달라요. 이 물음은 읽는 사람이 자기 상황에 이 구절을 어떻게 적용할지와 바로 맞닿아 있어요.
또 하나 남는 물음은 자족이라는 낱말의 뿌리가 원래 자기 충분함을 가리켰다면, 그 낱말이 그리스도인에게 와서 뜻이 바뀌었다고 할 때 그 변화가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점이에요. 낱말은 같은데 가리키는 힘의 출처가 달라졌다는 설명을 어떻게 더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으로 남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