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비블리카Batu Biblica

바투 소개

하나님과 더 가까이.

바투는 성경을 읽고, 읽은 다음에 떠오른 생각과 기도를 적는 앱이에요.

오늘 읽을 곳을 직접 고르고, 읽고, 그 자리에서 적어요. 여기까지가 한 편이죠. 빠르면 오 분, 길게 붙들고 있으면 삼십 분. 정해진 분량이 없어서 그날 사정에 맞추면 되거든요.

다 적고 나면 그날 읽은 곳과 쓴 글이 한 장으로 남아요. 그 한 장이 쌓이는 것. 그게 바투에서 하는 일의 전부예요.

아침 햇빛이 드는 창가 의자에 앉아 성경을 펴 놓고 읽는 사람의 뒷모습 그림. 팔걸이에 폰이 놓여 있다.

왜 만들었나

일요일에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가 수요일이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설교 말씀이 좋았던 날에는 메모까지 남겨 둬요. 그런데 월요일에 출근하고 회의를 두 번 거친 뒤 저녁에 집에 오면 그 메모를 다시 펴는 일은 드물죠. 수요일쯤 누가 물으면 무슨 내용이었는지도 잘 안 떠오르거든요. 이게 꼭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에요. 일요일과 다음 일요일 사이 한 주 동안 성경을 펴는 일이 한 번도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죠.

마음먹고 성경 일독표를 받아 오기도 해요. 첫 주는 잘 넘어가죠. 둘째 주에 하루를 빠뜨리고, 셋째 주에는 빠진 날부터 읽어야 하는지 오늘 것부터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표를 덮어요.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이야기라서 잘 읽히는데, 레위기에 들어가면 제사 규정이 계속 이어져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 어렵거든요. 대개 거기서 멈추게 돼요.

앱으로도 해 봐요. 오늘 읽을 구절을 화면에 띄워 주고 다 읽으면 표시를 남겨 주는 방식이죠. 표시는 잘 모여요. 하지만 한 달 뒤에 남는 건 그 흔적뿐이에요. 무엇을 읽었는지,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어디에도 안 적혀 있으니까요.

읽기는 읽었는데 손에 남는 게 없다. 이것이 저희가 붙잡은 문제였죠.

벽에 걸린 성경 일독표 그림. 첫 줄 네 칸에만 표시가 있고 나머지 칸은 비어 있다. 아래 탁자에는 끈을 끼운 채 덮어 둔 책이 놓여 있다.

그래서 기존과는 다르게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읽을 곳을 앱이 고르지 않는 것, 그리고 읽은 다음에 반드시 적게 하는 것. 이 둘이 핵심이고 아래 기능들은 그 위에 덧붙인 것들이에요.

이렇게 한 달쯤 쓰면 기록 화면에 그동안 쓴 글이 날짜별로 쌓여요. 목록의 줄을 누르면 그날 읽은 곳과 적어 둔 글이 함께 열리죠. 눈으로 읽기만 한 기록이 아니라 직접 쓴 기록이라, 훑어보면 그 달에 내가 무엇을 붙들고 있었는지가 눈에 들어오거든요. 출석 도장만으로는 그걸 되짚어 볼 수 없잖아요.

바투가 하는 일

읽을 곳을 내가 정해요. 어느 책을 어디부터 읽을지, 하루에 몇 장을 읽을지 직접 정하는 방식이에요. 창세기부터 차례로 읽어 갈 수도 있고 요즘 마음에 걸리는 본문만 골라 나만의 묶음을 만들 수도 있죠. 잠이 안 오는 날이 이어지면 시편에서 열 군데만 묶어 두는 식이에요. 하루를 건너뛰어도 밀린 분량은 안 쌓여요. 다음에 열면 멈춘 곳에서 곧바로 이어지니까요.

읽는 화면을 내가 꾸며요. 글씨 크기, 서체, 단 나누기, 구절을 묶어 보여 줄지 한 절씩 떨어뜨릴지까지 바꿀 수 있어요. 본문만 놓고 조용히 읽어도 되고 배경 설명과 낱말의 본래 뜻을 함께 띄워도 좋죠. 필요 없는 기능은 끄면 화면에서 사라지거든요. 오늘은 조용히, 내일은 설명을 켜고. 그날그날 다르게 설정해 두고 읽어도 괜찮아요.

읽은 다음에 바로 적어요. 마음에 걸린 구절에 형광펜을 긋고 떠오른 생각과 기도를 같은 화면에 적어요. 다른 앱을 열거나 공책을 꺼낼 필요가 없죠. 읽은 곳과 쓴 글이 한 장에 같이 남으니 나중에 다시 열면 그날 무엇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함께 보여요. 생각 칸과 기도 칸은 따로 분리해 두었어요. 둘은 성격이 다른 글이잖아요.

막히면 질문이 도와요.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 있죠. 그럴 때 「스무고개」를 누르면 인공지능이 질문을 하나씩 건네요. 답을 쓰면 다음 질문이 이어지고 그걸 따라가다 보면 쓸 말이 생기거든요. 다만 기계가 먼저 답을 주지는 않아요. 답을 주면 그걸 베끼게 되고 베낀 건 내 글이 아니니까요.

읽고 그 자리에서 적는 화면
읽고 그 자리에서 적는 화면
성경 읽기 화면
성경 읽기 화면
설교노트 화면
설교노트 화면
모임에서 서로 쓴 글을 보는 화면
모임에서 서로 쓴 글을 보는 화면

설교를 놓치지 않아요. 설교노트는 적는 칸과 정리하는 칸으로 나뉘어 있어요. 예배 중에는 받아 적기만 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을 정리하는 거예요. 일주일 내내 같은 노트를 키워 나갈 수 있죠. 노트에 적힌 장과 절을 누르면 성경의 그 대목이 바로 열리거든요.

같은 교회 사람들과 함께 봐요. 쓴 글 가운데 보여 주고 싶은 것만 골라 모임에 올려요. 그렇게 올라온 글에는 「아멘」을 눌러 줄 수 있는데 다른 서비스의 「좋아요」에 해당하는 단추죠. 모임을 이끄는 사람이 함께 읽을 본문을 걸어 두면 모두가 같은 날 같은 곳을 읽게 돼요. 예배 순서지를 만들어 나누는 기능도 있어요.

인터넷이 없어도 돼요. 성경 본문을 폰에 미리 받아 두면 신호가 끊긴 곳에서도 펴 볼 수 있거든요. 그 자리에서 적은 글은 폰에 담아 두었다가 신호가 돌아올 때 저절로 서버에 올라가요. 지하철에서 쓰기 좋게 만든 기능이죠.

본문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써요. 저작권은 재단법인 대한성서공회에 있고, 허락을 받고 쓰고 있어요.

바투가 하지 않는 일

기능을 못 만든 게 아니라 안 만들기로 정한 것들이에요.

책상 위에서 두 손이 공책에 펜으로 글을 적고 있는 그림. 옆에 펼친 책과 폰이 놓여 있다.

답을 대신 내지 않아요

인공지능은 결론이나 해석을 내놓지 않아요. 질문만 건넬 뿐,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은 쓰는 사람의 몫이죠. 기계가 「이 구절은 이런 뜻이에요」라고 요약해 주면 읽기는 훨씬 편해요. 하지만 그렇게 넘긴 날은 아무것도 남지 않거든요. 내가 읽은 게 아니라 남이 읽은 이야기를 들은 셈이니까요.

읽을 곳을 골라 주지 않아요

물론 오늘 읽을 곳을 기계가 정해 주면 편하긴 하죠. 하지만 그 방식을 따르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기계가 골라 준 말」을 읽게 되잖아요. 성경의 어디를 펼지 고르는 그 잠깐이 실은 시작이거든요. 오늘 무엇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적은 글은 잠가서 보관해요

쓴 글과 기도는 폰 안에서 잠긴 뒤에 서버로 올라가요. 서버에 쌓이는 건 잠긴 덩어리죠. 다만 지금은 여는 열쇠를 저희가 함께 맡고 있어요. 폰을 바꿨을 때 글이 통째로 안 열리는 일을 막으려고 그렇게 했거든요. 열쇠를 저희 손에서 지우고 잠그는 기능을 만들고 있고, 그 전까지는 이렇게 정직하게 밝혀 두려고 해요.

비밀번호를 따로 정하시면 스물네 낱말짜리 복구 코드를 함께 드려요. 비밀번호를 잊어도 그 코드로 열 수 있으니 적어서 잘 두세요.

안 올린 글은 아무도 못 봐요

바투에서 쓴 글은 나만 보는 것이 기본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려면 그 글을 직접 골라서 모임에 올려야 하죠. 올리지 않으면 같은 모임 사람도, 모임을 이끄는 사람도 볼 수 없어요. 한 가지는 미리 알려 드릴게요. 모임에 올린 글은 탈퇴한 뒤에도 남아요. 이름만 지워지거든요.

혼자 두지 않아요

앱 안에 모임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바투가 교회를 대신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교회로 돌아가는 길을 넓히는 역할을 하죠. 각자 흩어져 지내는 일상에서 성경 읽기와 기도를 이어 가고, 다시 모일 때 조금 더 가까이 앉게 돕는 것이 바투가 할 일이니까요.

혼자 읽고 혼자 적으면 대개 셋째 주에 멈춰요. 아무도 안 보고 아무도 안 기다리니까요. 그렇다고 남에게 보이려고 쓰면 그건 또 다른 성격의 글이 되고 말죠. 그 사이를 찾는 게 숙제였어요.

올해 8월에 한 교회 모임이 통째로 바투를 시작했어요. 그 뒤로 본 것은 이래요.

볕이 드는 방에서 다섯 사람이 둘러앉아 책을 펴 놓고 이야기하는 그림.

2026년 9월 16일에 센 숫자예요. 이 숫자가 모임 덕분이라고는 말 못 해요. 같은 날 다 같이 시작한 분들이라 견줄 대상이 없거든요. 여기까지가 지금 저희가 아는 전부예요. 그래도 혼자 쓰게 두지 않는 쪽이 낫다고 보고 그렇게 만들고 있죠.

모임으로 함께 시작하고 싶으시면 hello@batu.kr 로 알려 주세요. 모임을 만드는 단계부터 같이 봐 드릴게요.

이름과 로고

「바투」는 국어사전에 있는 우리말이에요. 두 사람이나 두 물건 사이가 아주 가깝다는 뜻이고, 「의자를 바투 당겨 앉다」처럼 쓰죠. 요즘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말이긴 해요.

누군가를 다그치기보다 곁에 다가앉는 것. 이름을 이걸로 정한 마음이 바로 거기에 있어요.

심볼은 정육면체예요. 옛 성전 안에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방을 지성소라고 불렀거든요. 가로와 세로와 높이가 똑같은 정육면체였고요.

가운데 주황색은 나침반 바늘이에요. 어디에 서 있든 가리키는 곳은 하나잖아요. BATU 글자에서 A 자리에 선 모양도 같은 화살표죠. 이름 안에 방향을 담아 두었어요.

돈은 얼마나 드나

성경을 읽고 적는 데는 돈이 안 들어요. 지난 글도 무료로 전부 열어 봐요.

무료와 이용권이 갈리는 지점은 인공지능 쪽이에요. 스무고개 질문은 하루 한도가 정해져 있고 지난 대화를 얼마나 기억하는지도 다르거든요. 모임을 직접 만들 때도 이용권이 필요하죠. 값과 결제 조건은 이용권 안내에 적어 두었어요.

지금 무료인 범위를 줄이게 되면 서른 날 전에 미리 알려 드릴게요.

이 블로그에서 쓰는 것

이 블로그는 바투를 만들면서 같이 글을 쓰는 곳이에요.

어떤 날에 어떤 구절을 어떻게 읽었는지 한 편씩 써 내려가요. 잘된 이야기만 적지는 않죠. 흐름이 끊긴 날과 다시 시작한 날, 시도해 보았다가 안 됐던 방법도 숨김없이 같이 남기거든요.

밤에 스탠드 불빛이 켜진 책상에 펼친 공책과 쌓인 책 몇 권이 놓여 있는 그림.

글을 읽다가 마음이 움직이면 끝부분에서 바로 그 본문을 앱으로 열 수 있어요. 내친김에 오늘 한 편을 그 자리에서 하시라고 붙여 둔 단추죠.

성경 예순여섯 권이 각각 어떤 상황에서 쓰였는지 한 권씩 정리하는 연재도 준비하고 있어요. 레위기에서 멈추는 건 대개 게으름 탓이 아니라 그 책이 왜 그렇게 쓰였는지 모른 채 들어갔기 때문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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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편부터

가입하지 않아도 로마서 한 장으로 한 편을 그대로 해 볼 수 있어요. 스무고개 질문과 배경 설명, 낱말 풀이도 하루에 한 번씩 써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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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만들고 있는지는 작성자에 적어 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