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린 부분

마태복음 25장 14절부터 17절을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떠나는 이가 종들에게 각각 다른 할 일을 맡기는 장면인데요, 다섯을 받은 사람과 둘을 받은 사람과 하나를 받은 사람이 나와요. 처음 읽을 때는 그저 숫자 차이로만 보이는데요, 다시 읽으면 그 차이보다 그다음에 각자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더 눈에 들어와요. 다섯과 둘을 받은 사람은 곧 나가서 무언가를 했다고 나오고요, 하나를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숨겼다고 나와요. 여기서 걸리는 지점은, 받은 양이 다른데도 나중에 돌아온 이가 다섯과 둘을 받은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건넨다는 부분이에요. 25절 즈음에서 하나를 받은 사람이 두려워서 숨겼다고 말하는 부분도 눈에 걸려요. 왜 두려움이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는지, 그 두려움의 모양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부분이거든요. 다섯이든 둘이든 받은 양이 다른데 결과에 대한 요구는 같다는 게,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라 여러 번 눈이 머무는 부분이에요.
본문과 주석

먼저 본문의 흐름을 장절로만 짚어 볼게요. 14절부터 15절에서 떠나는 이가 종들을 불러 각각 다른 할 일을 맡기는 장면이 나오고요, 16절부터 18절에서 세 종이 각각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나와요. 19절부터 23절에서 돌아온 이가 다섯과 둘을 받은 두 종에게 같은 말로 반응하는 장면이 나오고요, 24절부터 30절에서 하나를 받은 종이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이 이어져요.
존 길의 주석은 이 비유를 교회의 눈에 보이는 모습, 곧 그리스도의 승천과 다시 오심 사이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로 봐요. 14절의 떠나는 사람을 그리스도로 보고, 먼 나라로 가는 여행을 하늘로 가는 승천으로 풀어요. 그 나라가 멀다는 것은 땅에서 보기에 아직 보이지 않는 거리라고 설명하는데요, 다만 이 글에서는 그 뜻풀이를 그대로 옮기지 않고, 존 길이 그렇게 본다는 것만 전할게요.
종들을 부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부름받고 준비된 이들을 가리킨다고 존 길은 말해요. 그가 보기에 이 종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이나 택함받은 모든 이가 아니라,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을 가리키는 부분으로 읽는다고 해요. 그 근거로 존 길은, 이 가운데 한 사람이 결국 악하고 게으르며 은혜 없는 상태로 끝나 영원히 잃어버려진다는 점을 드는데요, 이것이 택함받은 모든 이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그는 봐요.
15절의 달란트에 대해서는, 존 길이 화폐 단위로서의 값어치를 브레어우드와 컴벌랜드 주교의 계산을 빌려 소개해요. 은으로 된 달란트 하나가 상당히 큰 액수라고 하고, 금으로 된 경우는 훨씬 더 크다고 전해요. 다만 존 길은 이 달란트가 특별한 은혜 자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어요. 그 이유로, 본문이 종들 안에 심어진 무언가를 말하는 게 아니라 맡겨진 것, 곧 쓰이지 않고 방치될 수도 있고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을 말한다는 점을 들어요. 반면 특별한 은혜는 내면에 심긴 것이어서 없어지거나 빼앗기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해요. 그래서 존 길은 이 달란트를, 사역자로서 맡겨진 은사, 곧 말씀을 전하는 데 쓰이는 능력으로 보는 쪽에 무게를 둬요.
이 주석을 따라가다 보면, 본문을 읽을 때 다섯과 둘과 하나라는 숫자 차이보다, 그 숫자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먼저 떠올라요. 존 길의 풀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적어도 이 본문이 개인의 내면적 신앙 상태를 재는 잣대가 아니라 맡겨진 무언가에 대한 반응을 다루는 이야기라는 방향은 눈에 들어와요.
오늘 할 것

오늘은 본문을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려고 해요. 14절부터 30절까지 한 번에 읽으면서, 세 종의 반응이 나오는 부분마다 잠깐 멈춰 보는 방식으로 해 볼게요. 특히 18절과 25절에서 두려움이라는 말이 나오는 부분을 눈에 담아 두려고 해요. 두려움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그 두려움이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것이었는지 본문 안에서 찾아보는 게 오늘의 작은 목표예요.
그다음에는 짧게 기록해 보려고 해요. 거창한 해설을 쓰는 게 아니라, 오늘 읽으면서 눈에 걸린 장절과 그 이유를 한두 줄로 남기는 정도로요. 예를 들어 19절부터 23절에서 다섯과 둘을 받은 두 종에게 같은 말이 건네지는 부분을 다시 찾아보고, 그 반복되는 말이 어떤 분위기로 다가오는지 적어 보려고 해요.
또 하나는, 이 본문을 혼자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소그룹에서 나눠 볼 계획을 세워 보려고 해요. 각자 받은 할 일이 다르다는 설정과, 그 할 일에 대한 반응이 결과를 가른다는 흐름을 놓고 서로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는 시간을 마련해 보려고 해요. 나눔 전에 미리 질문 두세 개를 준비해 두면 대화가 더 수월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 안에서 작게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정해 보려고 해요. 맡겨진 것을 두려움 때문에 묻어 두는 대신, 작은 일이라도 움직여 보는 선택을 해 보는 거예요. 크지 않아도 괜찮으니, 오늘 안에 실제로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정하고 실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볼게요.
남은 물음

아직 풀리지 않는 물음이 몇 가지 남아요. 먼저, 다섯과 둘을 받은 두 종에게 똑같은 말이 건네진다는 19절부터 23절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금해요. 받은 양이 다른데 반응이 같다는 것이, 결과보다 태도를 더 중요하게 보는 방향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더 살펴보고 싶어요.
또 하나는, 하나를 받은 종이 말하는 두려움의 정체예요. 25절에서 그는 두려워서 숨겼다고 말하는데, 그 두려움이 맡긴 이에 대한 오해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인지 본문만으로는 분명하게 갈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존 길이 이 종들을 말씀을 맡은 사역자들로 한정해서 보는 풀이를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도 남은 물음이에요. 이 풀이를 따르면 본문이 읽는 사람 각자에게 적용되는 폭이 좁아질 수도 있는데, 그 폭을 어떻게 잡는 게 좋을지는 좀 더 생각해 볼 부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