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린 부분

여호수아 1장 6절부터 9절까지 읽다가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같은 말이 여러 번 되풀이돼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6절에도 나오고 7절에도 나오고 9절에도 다시 나와요. 왜 이렇게 반복하는 걸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한 사람에게 이렇게 여러 번 같은 말을 되풀이할 정도라면, 그 사람 안에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요. 모세를 뒤이어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순간에 선 사람에게, 앞에는 강한 민족들이 사는 땅이 있고 뒤에는 따라오는 백성들이 있어요. 그 사이에 선 사람의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이 말씀이 그냥 마음가짐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율법책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눈에 걸려요. 8절과 9절이 붙어 있는 방식이 그냥 기분을 다잡으라는 말이 아니라 무언가와 이어진 담대함이라는 느낌을 줘요.
본문과 주석

먼저 6절부터 9절의 흐름을 보면,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율법을 떠나지 말라는 말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다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로 마무리돼요. 이 구조 자체가 이미 한 가지를 말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존 길은 6절을 두고, 이 권면이 군대를 이끄는 사람에게 흔히 필요한 위대함과 강함을 말하는 것이면서, 적의 수와 힘에 눌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요. 여호수아가 이미 아말렉과 싸운 경험이 있는 용맹한 사람이었는데도 이 권면이 다시 필요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이제 맞서야 할 사람들이 이전보다 많고 강하며, 견고한 성에 살고 있고, 이미 이스라엘의 움직임을 알고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7절에 대해서는 존 길이,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단순한 기세를 말하는 게 아니라 율법을 따라 행하는 것과 묶여 있다고 풀어줘요.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말을, 벤 게르솜의 풀이를 빌려 율법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과 빼는 것 둘 다를 가리킨다고 설명해요. 그리고 형통하다는 말은 전쟁에서 이기는 것과 이어져 있는데, 그 승리의 길이 군대를 이끄는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병사들에게도 지키게 하는 데 있다고 봐요.
8절에 대해서는 존 길이, 율법책이 입에서 떠나지 않게 한다는 말을 자주 읽고 자주 되풀이해서 말하며 스스로의 기억과 주변 사람들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풀어요. 낮이든 밤이든 공적인 일에서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 시간에 묵상하라는 뜻으로 읽고, 시편 1편 2절과 연결지어요.
아담 클라크는 이 부분을 두고, 모세를 통해 이미 기록된 율법이 백성이 살아갈 원칙이 되는 것이며, 성소에 율법 한 부의 사본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고 해요. 여호수아 자신도 자기가 가진 사본을 두고 끊임없이 그것을 살펴야 했다고 봐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은 좋은 것을 부족함 없이 얻는다는 말로 이 부분을 마무리해요.
카일과 델리치는 6절부터 8절을 두고, 약속에는 조건이 따른다고 봐요. 여호수아는 먼저 하나님과 그 약속에 굳게 의지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율법을 조심스럽게 지킴으로써 그 굳건함에 이르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풀어요. 율법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말은 단순히 끊임없이 그것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며 읽고 다른 사람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도 포함한다고 해요. 그리고 묵상한다는 말은 바리새인들이 했던 이론적인 사색이 아니라, 마음과 입과 손으로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실천적인 살핌이라고 구분해줘요.
매튜 헨리는 이 부분 전체를 두고, 모세가 죽은 뒤에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된다는 점을 강조해요. 쓸모 있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도 남은 사람들이 그 일을 더 부지런히 하도록 자극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어요. 그리고 여호수아가 오랫동안 모세 밑에서 훈련받고 복종을 배운 사람이었다는 점을 짚으면서, 다스릴 준비가 된 사람은 먼저 순종을 배운 사람이라고 해요.
존 길은 9절에 대해, 거듭 반복되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결국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여호수아 자신의 부족함이나 백성을 이끄는 데 있어 마주할 어려움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되었기 때문이라고 풀어요.
제이에프비 주석은 5절부터 9절을 묶어서, 가나안 땅이 이미 하나님의 약속으로 그들의 것이었으며 이 확증이 쉬운 정복을 암시한다고 봐요. 다만 그 승리와 소망이 율법 전체에 흔들림 없이 붙어 있는 것에 달려 있었다는 점을 특별히 짚어줘요.
오늘 할 것

오늘은 여호수아 1장 6절부터 9절까지를 소리 내어 천천히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읽으면서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손가락으로 표시해보는 것도 좋아요. 그 반복이 주는 무게를 몸으로 느껴보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노트나 성경 앱의 메모 기능을 열어서, 지금 나에게 강하고 담대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적어봐요.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오늘 하루 안에서 마주할 작은 두려움이어도 괜찮아요. 예를 들면 어떤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거나, 미뤄둔 일을 처리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리고 존 길이 풀어준 대로, 담대함이 그냥 기세가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것과 이어져 있다는 부분을 떠올리며, 오늘 하루 중 말씀 한 구절을 마음에 담아두는 시간을 가져봐요. 짧게라도 그 구절을 입으로 되풀이해보는 것도 도움이 돼요.
혼자 하기 어렵다면 소그룹이나 청년부 모임에서 이 본문을 함께 나눠보는 것도 좋아요. 서로 어떤 부분에서 담대함이 필요한지 나누다 보면, 각자의 기도제목이 더 선명해지는 순간이 생길 수 있어요.
마지막으로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낸 순간이 있었는지 짧게 돌아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도 추천해요. 작게 시작한 기록이 나중에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남은 물음

주석들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남는 물음이 있어요. 강하고 담대함이 율법을 지키는 것과 이렇게 단단히 묶여 있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 담대함의 근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에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생겨요.
또 매튜 헨리가 말한 것처럼, 앞선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를 다음 사람이 채워가는 흐름이 지금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궁금해져요. 누군가가 하던 일을 이어받는다는 것이 부담으로만 느껴지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 걸까요.
그리고 카일과 델리치가 구분해준 것처럼, 묵상이 이론적인 사색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는 살핌이라면, 나의 묵상 습관은 지금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도 스스로 물어볼 만한 질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