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비블리카Batu Biblica

70년을 기다려야 들리는 좋은 말씀

성경읽기, 2026. 10. 2.

요약

예레미야 29장 10절부터 14절을 두 가지 태도로 견주며, 빠른 끝을 바라는 마음과 정한 때를 믿고 견디는 마음을 나란히 놓아 봐요.
오늘 본문 부분을 정하고 짧게 기록하는 실천까지 담았어요.

걸린 부분

책상 위에 놓인 모래시계에서 고운 모래가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부터 14절을 읽다가 마음이 걸리는 부분이 있어요. 바빌론에 끌려간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데 말씀은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먼저 꺼내요. 기다림의 끝이 곧 온다는 말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차야 온다는 말이 먼저 나와요. 그 다음에야 좋게 될 생각과 평안한 목적을 말해요. 순서가 걸려요. 먼저 위로를 주고 그다음 기다림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기다림을 먼저 요구하고 그 뒤에 위로를 줘요.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 순서가 불편할 수 있어요. 당장 답을 듣고 싶은 마음과, 정한 때를 믿고 견디라는 말씀 사이에 거리가 생기거든요. 이 거리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가 오늘 묵상의 출발점이에요. 급한 마음으로 성경을 펼 때가 있는데, 이 부분은 그 급함을 잠깐 세워두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본문과 주석

차분한 조명 아래 두꺼운 책과 펼쳐진 책장 사이에 펜이 놓여 있는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부터 14절을 두 갈래로 견줘볼 수 있어요. 하나는 거짓 예언자들이 전한 말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전한 말이에요. 매튜 헨리는 거짓 예언자들이 백성에게 빠른 귀환을 약속했고, 백성들도 그 말을 듣고 싶어했다고 봐요. 스스로 바라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예언자들에게 확인받고 싶어했다고 해요.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그 기대를 곧바로 채워주지 않아요. 70년이라는 시간을 먼저 세워두고, 그 시간이 차야 비로소 좋은 말씀을 이루겠다고 해요.

존 길은 이 70년을 여호야김 4년, 느부갓네살 1년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봐요. 마지막 포로로 끌려간 시드기야 때부터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백성이 느끼는 시작점과 하나님이 계산하는 시작점이 다를 수 있어요. 사람은 자기가 겪는 고통이 시작된 순간부터 시간을 세지만, 하나님은 더 이른 시점부터 이미 계획을 세워두셨다고 볼 수 있어요.

11절의 “좋게 될 생각과 재앙이 아닌 생각”에 대해 존 길은, 사람은 생각을 품었다가도 잊어버리지만 하나님은 그 생각을 대대로 이어가신다고 해요. 사람의 의도는 쉽게 흐트러지지만, 하나님의 의도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대조로 짚는 거예요. JFB는 이 부분에서 유대인들이 처음에는 하나님의 경고를 비웃으며 빠른 귀환을 자신했고, 그 자신감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절망에 빠졌다고 해요. 두 극단 사이를 오가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점을 짚어주는 셈이에요.

12절과 13절의 “부르고 찾으라”는 말에 대해 매튜 헨리는,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려 하실 때 오히려 그 백성에게 기도하려는 마음을 먼저 부어주신다고 해요. 기도가 먼저 있어서 자비가 오는 게 아니라, 자비가 다가올 무렵 기도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순서로 보는 거예요. 카일과 델리치는 “부르고”라는 말과 “가서 기도하고”라는 말을 따로 떼어, 단순히 부르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실제로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풀어요.

14절에서는 흩어진 백성을 모든 백성 가운데서, 모든 곳에서 모으겠다는 말이 나와요. 카일과 델리치는 이 부분이 신명기 30장의 약속을 짧게 되짚는 순간으로 봐요. 오래전 약속을 다시 끌어와 지금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는 거예요. JFB는 “돌리다”와 “포로”라는 두 낱말이 소리가 비슷하게 이어진다고 짚어주는데, 이런 소리의 어울림이 본문의 방향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고 봐요.

두 갈래를 견줘보면 이런 그림이 나와요. 거짓 예언자의 말은 지금 당장 듣기 좋지만 근거가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당장은 무겁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져요. 급한 위로와 늦은 진짜 약속, 이 둘 사이에서 어느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스스로 물어볼 수 있어요.

오늘 할 것

창가 책상에서 손으로 다이어리에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은 예레미야 29장 10절부터 14절을 천천히 두 번 읽어볼까요. 처음 읽을 때는 흐름만 따라가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생각”이라는 낱말이 나오는 부분에 표시를 해봐요. 그다음 짧게 기록장을 펴고 세 가지를 적어봐요. 첫째, 지금 내가 바라는 빠른 끝은 무엇인지. 둘째, 그 끝을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이 거짓 예언자의 말처럼 급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아니면 정한 때를 믿는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 셋째, 12절과 13절처럼 실제로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가 본 적이 있는지 적어봐요.

기록은 길게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한두 문장씩만 적어도 오늘 묵상의 흐름이 남아요. 알림을 하나 맞춰두고, 저녁에 다시 한 번 그 기록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아침에 적은 급한 마음과 저녁에 돌아본 마음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견줘보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실천은 충분해요. 혼자 하기 어렵다면 소그룹이나 청년부 모임에서 같은 본문을 나누고, 각자 적은 세 가지를 짧게 나눠보는 것도 좋아요. 서로 다른 기다림의 모양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거든요.

남은 물음

해 질 녘 빗방울이 맺힌 창가에 놓인 머그잔과 창밖의 은은한 불빛이 보이는 모습입니다.

70년이라는 긴 시간을 앞에 두고도 평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존 길과 카일과 델리치가 짚은 것처럼 시작점을 다르게 계산하는 문제는, 지금 내가 겪는 기다림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세고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해요. 내가 느끼는 고통의 시작과 하나님이 이미 준비하신 계획의 시작이 다를 수 있다면, 그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한 매튜 헨리가 말한 것처럼 기도하려는 마음이 자비가 다가올 무렵 부어진다면, 지금 내 안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있는지도 돌아볼 물음이에요. 급한 위로를 바라는 마음과 늦은 진짜 약속을 기다리는 마음, 이 둘 사이의 거리를 오늘 하루 동안 어떻게 좁혀갈 수 있을지 계속 물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