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비블리카Batu Biblica

이런 때를 위해 - 에스더 4장 13절부터 16절

성경읽기, 2026. 10. 21.

요약

모르드개의 말과 에스더의 응답 사이에 놓인 긴장을 따라가며, 주어진 자리를 쓰는 일과 두려움 사이를 오늘 어떻게 지나갈지 생각해 봐요.

걸린 부분

원목 테이블 위에 정갈하게 놓인 만년필과 펼쳐진 빈 공책, 그리고 그 곁에 놓인 빈 도자기 그릇과 물 한 잔의 모습.

에스더 4장 13절부터 16절 사이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두 문장이 나란히 놓여 있어요.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왕궁에 있다고 해서 혼자 피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에스더가 나서지 않더라도 다른 곳에서 구원이 일어날 거라고 말해요. 한쪽은 너도 위험하다는 말이고 다른 한쪽은 네가 아니어도 길은 있다는 말인데, 이 둘이 왜 함께 놓였는지가 궁금해지는 부분이에요.

또 하나 걸리는 지점은 14절 끝의 물음이에요. 네가 이런 때를 위해 그 자리에 이른 것인지 누가 알겠냐는 물음은 확신을 주는 말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확답을 주지 않는 말이에요. 그리고 16절에서 에스더가 내놓는 대답,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은 13절부터 이어진 설득의 끝에 나온 것인데, 그 사이에 기도라는 낱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금식은 나오지만 기도라는 말이 빠져 있는 것도 본문이 남겨 둔 틈이에요.

본문과 주석

은은한 황동 스탠드 조명 아래 단정한 참나무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두꺼운 연구 서적들과 돋보기안경의 모습.

아담 클라크는 13절을 두고, 하만이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관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짚으면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왕궁에 있어도 유다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으로 봐요. 즉 이 말은 책임을 미루지 말라는 뜻보다 먼저, 너도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리는 말로 읽을 수 있다고 해요.

14절부터 15절에 대해 클라크는, 모르드개가 어떤 식으로든 구원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에스더가 가장 유력한 통로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으며, 만약 에스더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쓰지 않는다면 그 책임이 크다고 여겼을 거라고 해요. 그러면서 클라크는 하나님의 섭리가 사람을 특정한 자리에 세우는 것이 단지 그 사람만을 위한 것일 수 있겠느냐고 되물어요. 그리고 솔로몬의 말과 셰익스피어의 글을 나란히 인용하면서, 사람에게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때가 있고 그 때를 놓치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요.

존 길은 13절의 금식 명령을 설명하면서, 금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도를 돕는 부속물이라고 봐요. 즉 본문에 기도라는 낱말이 나오지 않아도 금식이 가리키는 실제 중심은 기도이고, 금식은 영혼의 고통과 낮춤을 나타내는 행위라고 해요. 또한 길은 16절의 왕 앞에 나아가는 일이 법에 어긋난다는 구절을 두고, 금식이 끝난 뒤에야 에스더가 결단했다는 점에 주목해요.

JFB 주석은 13절부터 15절을 하나로 묶어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왕실 혈통이라는 이유로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헛된 기대를 품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풀어요.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이 다른 통로로라도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 믿지만, 에스더가 그 자리에 오른 것이 바로 이 일을 위한 섭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카일과 델리치는 14절의 마지막 문장이 문법적으로 생략된 구조라는 점을 짚어요. 직역하면 '이런 때를 위해 왕비의 자리에 이르지 않았다면 어찌 알겠느냐'인데, 뒤에 와야 할 문장, 즉 '그랬다면 너는 무엇을 했겠느냐'는 부분이 빠져 있다고 해요. 이 생략 때문에 이 물음은 답을 정해 주는 말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스스로 채워야 하는 물음으로 남는다고 봐요. 또한 이들은 모르드개가 하나님이나 기도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으면서도, 자기 백성의 보존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는 확신을 바탕에 깔고 말한다고 설명해요. 16절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말도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태도로 읽을 수 있다고 봐요.

오늘 할 것

창가 책상에서 줄노트 위에 펜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겨 글을 적으려는 손과 찻잔의 모습.

오늘은 에스더 4장 13절부터 16절까지를 천천히 다시 읽어 볼까요. 읽으면서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건넨 두 가지 말, 즉 너도 위험하다는 말과 네가 아니어도 길은 있다는 말을 각각 따로 떼어 적어 보는 것도 좋아요. 그리고 14절의 물음, 이런 때를 위해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누가 알겠냐는 물음을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가운데 이 물음을 적용해 볼 만한 부분이 있는지 생각해 봐요.

이어서 16절의 에스더의 응답을 읽을 때는, 그 응답이 3일간의 금식 뒤에 나온 것이라는 점을 떠올려 봐요. 바로 결단한 것이 아니라 함께 멈추어 서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는 사실이에요. 오늘 하루 중 짧게라도 멈추어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 두고, 그 시간에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하나님께 묻는 것을 오늘의 할 일로 삼아 볼까요. 이 묵상을 짧게라도 기록으로 남겨 두면, 나중에 비슷한 물음이 다시 찾아올 때 돌아볼 수 있는 자료가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가까운 사람과 오늘 읽은 부분을 나누어 보는 것도 권해요. 혼자 품은 물음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더 또렷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남은 물음

해 질 녘 창가 곁에 놓인 소박한 원목 의자와 낮은 탁자 위의 찻잔이 만들어 내는 고요한 실내 풍경.

카일과 델리치가 짚은 것처럼 14절의 물음은 문장 구조 자체가 열려 있는 채로 남아 있어요. 그렇다면 이 물음은 에스더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읽는 사람 각자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는 물음으로 남는 것일까요.

또한 본문 전체에 하나님이나 기도라는 낱말이 직접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다시 생각해 볼 거리예요. 존 길과 카일과 델리치 모두 금식이 기도를 전제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말로 드러나지 않은 믿음을 본문에서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지도 물음으로 남아요.

마지막으로 16절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응답이 체념인지 순종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지도 궁금해지는 지점이에요. 같은 말이라도 그 앞에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 물음을 계속 품어 볼 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