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투 비블리카Batu Biblica

주기도문, 외우는 기도에서 따라가는 기도로

성경읽기, 2026. 9. 14.

요약

기도하다 말이 끊기는 날이 있어요.
마태복음 6장 9~13절 주기도문을 옛 주석과 함께 읽어요.

이 글은 개역개정 성경을 따르고, 옛 주석 세 가지를 참고했어요. 존 길(18세기 영국 목회자), 매튜 헨리(17~18세기 영국 목회자), JFB(19세기 영국 목회자 제이미슨과 포셋과 브라운)예요.

아침 햇빛이 드는 나무 책상에 펼친 책이 있고, 그 옆에 두 손을 모아 올려 두었다

말이 끊기고, 남의 말을 빌려 올 때

기도가 잘 되는 날도 있지만, 몇 마디 하다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 멈추는 날도 있어요. 감사도 아니고 부탁도 아닌, 그냥 말이 끊겨 눈을 뜨고 앉아 있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바쁜 하루 끝에 침대에 누워 겨우 몇 마디 웅얼거리다 잠드는 밤도 있어요.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은 없지만, 이게 기도인지 그냥 혼잣말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반대로 다급한 일이 생겨 무릎을 꿇었는데, 정작 무엇부터 구해야 할지 몰라 같은 말만 반복하게 되는 날도 있어요.

이런 순간에 흔히 하는 일은 기도를 잘하는 사람의 말을 흉내 내 보는 거예요. 그런데 남의 문장을 빌려 오면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내 말이 아니니까요.

그럴 때 다시 펴 보게 되는 본문이 있어요.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 제자들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나온 그 짧은 본문이에요. 너무 익숙해서 형식으로만 스쳐 지나가기 쉬운 이 몇 문장을, 오늘은 기도가 막히는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읽어 보려고 해요.

내 사정보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먼저

먼저 「우리 아버지」로 시작해요. 존 길의 풀이로는 이 부름이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담대함을 함께 갖게 하는 표현이에요. 「내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버지」라 부르라 한 것도, 나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고요.

매튜 헨리는 이 부름을 편지의 수신인을 적는 일에 견줘요. 그의 풀이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 부를 때 하늘은 그분의 능력과 순전함을 가리키죠.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담대히 나아가면서도 동시에 경건한 자세를 지녀야 해요.

JFB는 「아버지」라는 말에서 가까움을,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에서 거리감을 함께 느껴야 한다고 해요. 친밀함과 두려움이 한 문장 안에 같이 들어 있다는 뜻이에요.

방 안에서 올려다본 창 너머로 옅은 구름이 낀 아침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어지는 청원은 「이름」과 「나라」와 「뜻」을 구하는 부분이에요. 존 길에 따르면 이름을 거룩히 함이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 성품을 드러내는 일이에요. JFB가 보기에 나라가 임하는 것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흐름이고요. 그러니까 이 앞부분은 내 사정을 꺼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인하는 부분인 셈이에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부분도 여기 이어져요. 매튜 헨리는 이 청원이 몸의 필요를 아버지께 맡기는 일이라고 말해요. 거창한 요청이 아니라, 오늘 하루치를 구하는 데서 기도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어요.

건너뛰고 싶어도 건너뛸 수 없는 순서

그다음 용서를 구하는 부분은 「일용할 양식」 다음에 와요. 매튜 헨리는 주기도문의 여섯 청원 가운데 앞의 셋은 하나님과 그 이름에 관한 것이고, 뒤의 셋은 우리 자신의 형편에 관한 것이라고 나눠요. 용서를 구하는 부분이 바로 그 뒤쪽 셋에 속해요.

주황 네모 셋이 위로 올라가고, 휘어진 화살표를 지나 회색 네모 셋이 아래쪽에서 이어진다

몸의 필요를 구한 다음 곧바로 관계의 빚을 꺼내는 순서가 눈에 들어와요. 하루치 양식을 구하는 부분과 용서를 구하는 부분이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점만으로도, 기도가 몸과 관계를 따로 떼어 놓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시험과 악에서 건지심을 구하며 맺는 부분도 같은 흐름 안에 있어요. 헨리가 말한 뒤쪽 세 청원, 곧 우리 자신의 형편을 향한 청원이 여기서 끝나요.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구했다면, 여기서는 오늘의 빚과 오늘의 위험을 구하는 쪽으로 내려온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순서를 그대로 따라가 보면 기도가 막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짚어볼 수 있어요. 양식은 구하겠는데 용서는 건너뛰고 싶은 날, 위험은 피하고 싶은데 그 앞의 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어요. 주기도문은 그 순서를 건너뛰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기도이기도 해요.

첫마디부터 한 줄씩 소리 내어

그래서 오늘 기도를 길게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요. 「우리 아버지」로 시작하는 첫마디만 소리 내어 불러 보는 것부터 해볼 수 있어요. 누구에게 말을 거는지 먼저 확인하는 일이니까요.

네모 여섯이 한 줄로 이어져 있고, 앞의 셋은 칠해져 있으며 넷째는 테두리만 굵게 그려져 멈춘 곳을 가리킨다

그다음 「나라」를 구하는 부분에서 오늘 하루 중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떠올려 볼 수 있어요.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오늘 만날 사람이나 처리할 일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앞에 놓아 보는 정도로 충분해요.

「일용할 양식」을 구할 때는 오늘 필요한 것을 실제로 하나씩 말해 보는 것도 좋아요. 막연히 잘되게 해 달라는 말 대신, 오늘 해야 할 일과 오늘 마주칠 사람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꺼내 보는 거예요.

가장 어려운 건 아마 용서를 구하는 부분일 거예요. 오늘 마음에 걸리는 사람 한 명을 떠올리고, 그 이름을 실제로 입에 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용서했는지 안 했는지 스스로 판단하려 애쓰지 않아도 돼요. 그 이름을 기도 안으로 데려오는 것 자체가 오늘 할 일이에요.

시험에서 건지심을 구하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오늘 피하고 싶은 상황이나 반복되는 유혹을 하나만 정직하게 인정해 보는 것으로 마쳐도 돼요. 다섯 구절을 다 채우지 못해도, 어려운 한 부분에서 멈춰 서 보는 것이 오늘의 기도예요.

왜 유독 하기 어려운 기도가 있을까

돌이켜 보면 다섯 구절 중 어느 하나도 한 번에 다 이루어지지 않는 기도예요. 「우리 아버지」라 부르는 순간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순간, 용서를 구하는 순간은 각기 다른 무게를 가져요. 오늘 유난히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왜 유독 무거운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좋아요.

두 손을 모아 펼친 손바닥 위에 작고 매끈한 회색 돌 하나가 놓여 있다

어쩌면 그 무게는 오래 미뤄 둔 용서이거나, 정직하게 마주하지 못한 반복된 유혹일 수 있어요. 형식을 다 채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어려운 한 구절 앞에 조금 더 머물러 보는 것도 기도가 될 수 있어요. 다음에 이 본문을 다시 읽을 때, 오늘과 같은 부분에서 막힐지 아니면 다른 부분에서 막힐지도 눈여겨볼 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