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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히브리서 11장 1-6절

성경읽기, 2026. 9. 16.

요약

기도가 막혀 믿음이 흐릿해지는 날이 있어요.
히브리서 11장 1~6절의 믿음의 정의를 옛 주석과 함께 읽어요.

이 글은 개역개정 성경을 따르고, 옛 주석 네 가지를 참고했어요. 아담 클라크(18~19세기 영국 목회자), 매튜 헨리(17~18세기 영국 목회자), 존 길(18세기 영국 목회자), JFB(19세기 영국 목회자 제이미슨과 포셋과 브라운)예요.

밤에 아파트 거실 소파에 앉아 도시 야경을 마주 보는 한 사람의 뒷모습

믿음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기도가 막힐 때가 있어요. 오래 바라던 일이 그대로 멈춰 있고, 손에 쥘 수 있는 증거는 하나도 없는 순간이에요. 그럴 때 믿음이라는 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져요. 어제까지는 당연히 붙들고 있던 것이 오늘은 손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어요.

교회에서 흔히 듣는 말들이 있어요. 믿으면 된다, 의심하지 말라, 기도하면 응답이 온다는 말들이에요. 그런데 정작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지, 믿음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양을 가지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을 그저 마음가짐이나 태도쯤으로 여기게 돼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는 것, 조금 더 참고 견디면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나무 식탁 위에 놓인 두 손바닥이 위로 향해 펼쳐져 있고 곁에 찻잔이 놓여 있다

하지만 오래 이어지는 기다림 앞에서는 그런 정의로는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어요.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 마음을 쏟는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지, 혹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돼요. 그 물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믿음이 무엇인지 정직하게 알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물음이에요.

히브리서 11장 1절부터 6절은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해요.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고, 그 정의가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보여 줘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는 말이 막연한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다는 것을 이 본문은 말하고 있어요. 오늘 막힌 기도 앞에 서 있다면, 이 말씀이 다시 시작할 실마리가 될 수 있어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 믿음의 정의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두 가지 말로 정의해요. 바라는 것들의 실상, 그리고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예요.

아담 클라크의 설명으로는 실상으로 옮긴 헬라어 단어가 원래 어떤 것이 서 있을 토대가 되는 것을 뜻해요. 그리고 증거로 옮긴 단어는 더는 의심할 수 없는 논증이 끝난 뒤에 마음에 생기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죠. 직각삼각형 두 변의 관계를 증명한 뒤에는 다시 의심할 수 없는 것처럼, 믿음도 그런 확실함을 가지는 셈이에요.

오래된 돌담 건물 모서리의 이끼 낀 주춧돌이 아침 햇빛을 받고 있다

매튜 헨리의 풀이로는 이 구절이 조금 달라요. 믿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영혼 안에 미리 살게 하는 힘이라고 해요. 그래서 믿는 사람은 기쁨과 영광을 미리 맛보는 셈이에요. 동시에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마음이 확실히 동의하는 일이기도 해요. 헨리는 이 동의가 감정이나 상상과는 다르다고 구분해요. 실감하지 못하고 그에 맞게 움직이지 않는 확신은 진짜 믿음이 아니거든요.

3절은 이 정의를 창조로 연결해요. 존 길의 설명대로라면 세계가 보이는 것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믿음의 시작점이에요. JFB 주석은 우리가 창조의 현장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요. 그래서 창조를 아는 일 자체가 이미 믿음의 행위가 돼요. 보이는 세계 뒤에 보이지 않는 말씀의 힘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믿음은 작동하고 있는 거예요.

아벨이 보여준 믿음의 열매

이제 4절 아벨의 제사로 넘어가요. 매튜 헨리의 설명으로는 성경이 아담과 하와의 믿음은 따로 말하지 않고 아벨부터 이름과 믿음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밝혀요. 그래서 아벨이 성경에서 믿음의 첫 본보기로 기록된 사람인 거예요.

JFB 주석에 따르면 아벨의 제사가 가인의 제사보다 나은 까닭은 좀 다른 데 있어요. 곡식이 아니라 짐승을 드린 일 자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명하신 방식을 따랐기 때문에 더 나은 제사가 됐어요. 하나님은 먼저 아벨의 사람됨을 받으시고, 그다음 그의 예물을 받으셨어요. 순서가 예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뜻이에요.

노을 지는 들판에서 돌담에 기댄 나무 지팡이와 그 너머로 풀을 뜯는 양 떼

JFB가 보기에 이 부분은 믿음이 사람을 먼저 받아들여지게 하고, 그 믿음이 담긴 예물이 뒤따라 받아들여지는 순서예요. 아무리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이라도, 믿음 없이 드리면 소용이 없거든요. 그래서 아벨의 제사는 형식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믿음 때문에 인정받은 거예요.

여기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앞선다는 사실이 드러나요. 아벨은 특별한 결과를 만들어 내서 인정받은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인정받았어요. 이 부분은 오늘의 신앙에도 같은 질문을 남겨요. 무엇을 얼마나 드리는지보다, 그 드림 안에 믿음이 있는지가 먼저라는 질문이에요.

오늘 나의 믿음이 바라는 것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해요. 실상이라는 말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지금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든다는 뜻이에요. 오늘 나의 믿음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바라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으면 믿음도 흐릿해지기 쉬워요. 건강이나 형편의 회복만을 바라는 기도는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쉽게 흔들려요. 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믿음은 상황이 바뀌어도 붙들 대상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저녁 무렵 아파트 창가에 서서 창밖 도시 불빛을 바라보며 손을 유리에 대고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

아벨과 에녹의 이야기는 결과가 아니라 태도를 보여 줘요. 아벨은 드림 안에 믿음이 있었고,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다고 기록돼요. 두 사람 모두 눈에 보이는 증거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앞에 두고 살았어요.

오늘 나의 하루도 그런 질문 앞에 서 있어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하루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으로 채워진 하루인지 물을 수 있어요. 그 질문에 곧바로 답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히브리서 11장 6절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말해요. 이 부분은 거창한 확신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에요. 오늘 하루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보이지 않는 그분을 찾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말씀 앞에 남기는 질문은 하나예요. 나의 믿음은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그 바라는 것이 보이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인지 오늘 다시 물어볼 수 있어요.